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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연구부 2019-05-07 17:21:00
우리나라 강 이야기

우리나라 4대강(한강, 낙동강,금강, 영산강)  이야기


1. 한강

    - 역사  : 한강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리어 왔습니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한반도의 중간 허리부분을 띠처럼 둘렀다는 뜻에서 '대수(帶水)', 고구려는 '아리수(阿利水)' 라고 하였습니다. 후에 백제가 '한수(漢水)' 라고 부른 뒤부터 한수 또는 지금의 이름인 한강(漢江)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공동체 생활이 이루어졌던 한강 부근은 백제의 위례성, 조선의 수도 한양, 그리고 현재의 서울까지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있어왔습니다. 1888년 한강에 증기선이 운항되고, 1900년에는 한강철교 설치와 함께 경인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이후 1912년, 1920년, 1925년 3차례의 대홍수를 겪으면서 한강에 제방을 쌓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인구증가로 한강의 수질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큰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 모식도  : 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산(1,418m) 북쪽 계곡인 검룡소로부터 발원하여 강원도 금강군 옥발봉(북한) 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팔당호에서 합류하여, 다시 한강하구에서 강원도 범동군 두류산(북한)에서 발원한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한강은 발원에서부터 한강 하구까지 유로연장이 약 494km이며, 국가하천 19개, 지방1급 하천 15개, 지방2급하천 886개를 합쳐 총 920여개의 하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 낙동강

    - 역사  : 낙동강의 원래 이름은 삼국시대엔 '황산강(黃山江)' 또는 '황산진(黃山津)'이라 하였습니다. 고려-조선 시대에 와서 '낙수(洛水)', '가야진(伽倻津)', '낙동강'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황산'이란 이름은 '황산나루' 때문에 나온 것인데, 이 나루는 지금의 양산군 물금면 물금리에 있던 나루로, 삼국시대에 신라의 수도 경주와 가락의 중심지 김해 사이에 교류가 성했던 곳입니다. '낙동(락동)'이라는 이름은 가락의 동쪽이란 뜻인데, '가락'은 삼국 시대에 가락국의 땅이었던 지금의 경상도 상주 땅을 가리킵니다. 즉, 상주(가락)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으로 '락동'이란 이름이 나왔습니다. 조선시대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 '지리전고(地理典故)' 편에도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낙동(洛東)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

낙동강은 유역의 논 약 86만ha의 농업용수와 여러 시읍(市邑)의 상수도용수 및 공업용수원이 되고 있는데, 특히 1969년 남강에 건설된 남강댐과 1976년 건설된 안동댐은 수자원의 효과적인 이용에 기여하는 한편, 각각 1만 2600kw, 9만kw의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유역의 농업ㆍ공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내륙지방의 교통동맥이 되어 조운(漕運) 등에 크게 이용되면서 강기슭에 하단(下端)ㆍ구포ㆍ삼랑진ㆍ수산(守山) ㆍ풍산(豊山)ㆍ안동 등의 선착장이 번창하였고, 또 6.25전쟁 당시에는 유엔군의 최후 방어선이 된 바 있습니다. 한편, 김해삼각주 말단부에 있는 을숙도(乙淑島) 일대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철새도래지입니다.


    - 모식도  :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1537m) 황지못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군을 중심으로 반변천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흐르다가 함창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 영강 등 여러 지류를 받아들이고 남쪽으로 흐름을 돌려 상주 남쪽에서 위천, 선산 부근에서 감천,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 남지 부근에서 남강을 합친 후 동쪽으로 흐름을 바꿔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을 합치고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갑니다. 낙동강의 길이는 521㎞, 유역면적은 23,817㎢ 입니다.


3. 금강

    - 역사  : 옥천 동쪽에서 보청천(報靑川), 조치원 남부에서 미호천(美湖川), 기타 초강(草江)ㆍ갑천(甲川)등 크고 작은 20개의 지류가 합류한다. 상류부에서는 감입곡류하면서 무주에서 무주구천동, 영동에서 양산팔경(陽山八景)등 계곡미를 이루며, 하류의 부여에서는 백마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부소산(扶蘇山)을 침식하여 백제 멸망 사에 일화를 남긴 낙화암을 만들었다. 강경부근에서 하구까지의 구간은 익곡(溺谷)을 이루어 군산ㆍ강경 등 하항이 발달하였으며, 종래 부강(芙江)까지 작은 배가 소항하여 내륙수로로 크게 이용되어 왔으나 호남선의 개통, 자동차교통의 발달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상류부에 대전분지ㆍ청주분지, 중류부에 호서평야(湖西平野), 하류부에 전북평야가 전개되어 전국 유수의 쌀 생산지대를 이룬다. 그와 같은 해상교통의 발달과 농업 생산으로 일찍이 연안에 공주ㆍ부여ㆍ강경 등 고도와 옛상업도시가 발달하였다. 1980년 신탄진 부근에 대청 다목적댐이 건설되었다. 기후는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여 온대 북한계에 가까워 유역의 평균기온은 11.0~12.5℃, 연간 수량은 1,100~1,300mm 이다.


    - 모식도  :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신무산에서 발원하여 서해의 군산만으로 유입하는 우리나라 6대하천의 하나. 유역면적 9,810㎢, 유로연장 397.25㎞로 남한에서는 한강,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본류는 장수읍의 수분리 원수분천(강태등골)에서 시작하여 진안고원과 덕유산지역에서 흘러오는 구리향천(九里 香川,34㎞), 정자천(程子川,30㎞)등 여러 지류들이 북쪽으로 흐른다.
전라북도의 북동부 경계 지역에 이르러 남대천(南大川,44㎞), 봉황천(鳳凰川,30㎞)과 합류하고 옥천과 영동사이의 충청북도 남서부에서 송천(松川,70㎞) 및 보청천(報靑川,65㎞)과 합류한 뒤 북서쪽으로 물길을 바꾼다. 다시 갑천(甲川,57㎞) 등 여러 지류가 합쳐 충청북도의 부강에 이르러 남서방향으로 물길을 바꾸면서 미호천(美 湖川)과 합류하고, 공주,부여 등 백제의 고도(古都)를 지나 강경에 이르러서는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道界)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4. 영산강

    - 역사  : 영산강의 이름은 지역에 따라 남포강·목포강·금강·사호강·곡강으로 불렸다. 『영산강 삼백오십리-물길따라 뱃길따라』(1995년)를 출간한 김경수(향토지리연구소장) 박사는 “영산강은 그 모양과 특징을 담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대체로 영산조창(榮山漕倉)의 기능을 살핀 영산강이 쓰이다가 근대에 이르러 유역권을 통칭해 사용됐다”고 말했다.

조창은 고려·조선시대 세곡의 보관과 운송을 담당한 곳이다. 나주 영산포에 설치된 영산조창을 거쳐 조선시대 전라도 세곡의 절반이 뱃길로 서울까지 운송됐다. 내륙의 수로와 서남해 바닷길이 만나는 통로로, 포구로 추정 되는 지명만 180여 개에 이른다.

1972년부터 영산강지구 농업종합개발사업이 시작돼 나주·담양·장성·광주 4개댐이 세워졌다. 2단계로 78~81년 목포 동쪽에 길이 4.3㎞에 이르는 영산강 하굿둑이 들어섰다. 조수가 막힘으로써 77년 말 이후 사람이나 물자를 실어 나르는 일은 완전히 중단됐다. 번성하던 영산포 선창가는 쇠락했다.


    - 모식도  : 길이 115.5 km. 유역면적 3,371 km². 담양군 용면(龍面) 용추봉(龍湫峰:560 m)에서 발원하여 담양 ·광주 ·나주 ·영암 등지를 지나 영산강 하굿둑을 통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남서류하면서 광주천(光州川:11.8 km) ·황룡강 (黃龍江:45 km) ·지석천(砥石川:34.5 km) ·고막원천(古幕院川:21.4 km) ·함평천(咸平川:15 km) 등의 지류와 합류한다. 조석(潮汐)의 영향이 나주 부근까지 미쳐 연안 농경지에 하천 범람 ·농토 침식 등의 피해를 주기도 하였으나 1981년 12월에 하굿둑이 축조됨으로써 감조구역(感潮區域)이 크게 줄어들었다.



출처 : 물환경정보시스템

           (http://water.nier.go.kr/publicFront/easyWater/waterInfo/easyRiver.jsp?menuIdx=1_2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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